일본의 개국은 거의 전부가 미합중국, 대영제국, 프랑스 및 네덜란드에 의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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駐韓日本公使館記錄 21권 > 三. 歐文雜纂 > (7) 日本은 武裝을 强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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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日本은 武裝을 强要당하다
1853년 페리 제독 휘하의 美國 함대가 어떤 조난사고를 조사하러 日本에 왔다. 그것으로 인해 쇄국시대는 끝났다. 일본인들은 더 이상 외국인들을 멀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나라를 점유당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연합함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일본의 성곽을 포격했고 연합육군은 일본 땅에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한편 민심은 격분하여 전국이 언제라도 화염에 휩싸일 것 같은 위기에 있었다. 그렇게 되면 외국 무기의 월등한 우월로 일본의 독립이 종식되는 길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와서는 너무 쓰라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의 시기였으나 현재 이 제국의 운명을 이끄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훈련이 되었다. 伊藤 侯爵과 그의 ‘원로정치가’ 집단의 동료들이 당시 통역 또는 각 부처의 차석으로 견습 연한을 채우는 중이었다. 외국과의 그칠 새 없는 어려움 외에도 여러 세기에 걸쳐 이 나라의 모든 기구의 큰 버팀기둥이었던 봉건제도의 갑작스런 폐지로 국내에는 엄청난 대변동이 있었다. 이 과업의 방대함은 英國이 봉건시대에서 벗어나는 데 4세기에 걸친 거의 끊임없는 전쟁이 소요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외부세계에 대한 일본의 개국은 거의 전부가 미합중국, 대영제국, 프랑스 및 네덜란드에 의해 이루어졌다. 러시아는 淸國에 매달려 있었으며 먼저 아무르江의 북부지방을, 다음에는 남쪽 기슭에 따른 지대를, 그리고 아래쪽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연해지방을 그럭저럭 손에 넣었다. 1861년에 갑자기 한 척의 러시아 군함이 對馬島에 강력한 군대를 상륙시켜 그 곳에 러시아 국기를 게양했다. 이것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취득에 당연히 따르는 것이었다. 對馬島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 공해로 통하는 해협에 면해 있었으니까. 그러나 對馬島는 일본의 것이었는데, 아마 일본 자체가 일본인들의 소유가 되기 이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 나라의 구성은 얼마 안 되는 토착 아이누 부족과 말레이군도 및 그 밖의 섬사람들과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을 거쳐 온 타타르族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그중 타타르族이 가장 우세한 요소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아마 멀리 일본 본토를 차지하기 이전에 對馬島에 정착한 것 같다. 여하간 그 섬이 러시아에 의해 강탈된다는 것은 일본이 적어도 하나의 국가로서 어떤 권리를 보유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한, 전적으로 용인할 수 없었다. 전쟁행위는 별문제로 하고, 이미 점유된 지역의 강탈은 점유자가 그것을 차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근거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가끔 강대국은 약소국의 권리를 무시할 수 있다는 뻔뻔스러운 진리를 비호하는 단순한 완곡어법(婉曲語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경우 그 약소국은 유럽과 미국의 후견과 보호를 어느 정도 받고 있다. 그와 같은 약탈을 허용하면 일본인들은 이전보다 더 외국침략에 분개할 것이며 모든 관련국에 큰 해를 끼칠 것이다. 그러므로 영국 정부는 러시아의 철수를 요구하고 근처에 강력한 함대를 파견하여 그 요구를 뒷받침했으며, 그 결과 그 섬은 일본에 반환되었다. 그 사건은 러시아의 위험성에 대한 뚜렷한 경고가 되기에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