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일본국 사자 유영이 임성 태자가 일본에 들어간 기록을 찾아 주기를 청하다

믿음을갖자 2022. 10. 2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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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1 계유(1453) 6 24(기유)

01-06-24[01] 일본국 사자 유영이 임성 태자가 일본에 들어간 기록을 찾아 주기를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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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日本國) 대내전(大內殿) 사자(使者) 유영(有榮)이 예조(禮曹)에 글을 올리기를,

“다다량씨(多多良氏)가 일본국(日本國)에 들어갔는데, 그 까닭은 일본에서 일찍이 대련(大連) 등이 군사를 일으켜 불법(佛法)을 멸(滅)하고자 하였고, 우리 나라 왕자 성덕 태자(聖德太子)는 불법(佛法)을 높히고 공경하였기 때문에 교전(交戰)하였으므로 이때 백제국왕(百濟國王)이 태자 임성(琳聖)에게 명하여, 대련(大連) 등을 치게 하였으니, 임성(琳聖)은 대내공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성덕 태자(聖德太子)께서 그 공을 가상히 여겨서 주군(州郡)을 하사한 이래로 그 거주(居住)하는 땅은 ‘대내공 조선(大內公朝鮮)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대내 후손(後孫)의 부정(否定)이 있지만 기로(耆老) 가운데 박식하고 통달한 군자가 있어서 그 계보(系譜)가 상세합니다. 대련 등이 군사를 일으킨 때가 일본국 경당(鏡當) 4년인데 수(隋)나라 개황(開皇) 원년(581년)에 해당하니, 경당(鏡當) 4년에서 경태(景泰) 4까지가 모두 8백 73년입니다. 귀국(貴國)에는 반드시 임성 태자(琳聖太子)가 일본에 들어간 기록(記錄)이 있을 것입니다. 대내공의 식읍(食邑)의 땅은 대대로 병화(兵火)로 인하여 본기(本記)를 잃어버리었고, 지금 기록한 것은 우리 나라의 남은 늙은이들이 구술(口述)로써 서로 전하여 왔을 뿐입니다.”

하니, 즉시 춘추관(春秋館)과 집현전(集賢殿)에 명하여 옛 사적(史籍)을 상고하여 이에게 주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옛 글에 이르기를, ‘일본 육주목(六州牧) 좌경 대부(左京大夫)는 백제(百濟) 온조왕(溫祚王) 고씨(高氏)의 후손인데, 그 선조가 난(亂)을 피하여 일본에서 벼슬살이하여 대대로 서로 계승하여 육주목(六州牧)에 이르렀다.’ 하니, 더욱 귀현(貴顯)이 되는데, 근년 이래로 대마도(對馬島) 등 삼도(三島)에서 흉도(兇徒)를 불러 모아서 우리의 변방을 침입하여 어지럽히고 인민들을 노략(虜掠)질하여서 이웃 나라간의 통호(通好)하는 것을 막았었다. 지난번에 대상국(大相國)이 의(義)로써 군사를 일으키고 육주목(六州牧) 자신이 독전(督戰)하여 그 무리들을 진멸(殄滅)하였다. 이 때문에 변경(邊境)이 평안하고 생민들이 생업에 안정(安定)하고 양국(兩國)이 통호(通好)를 수교하게 되었다.”

하였다.

【원전】 6 집 601 면

【분류】 외교-왜(倭)

[-D001] 기로(耆老) : 

나이 많은 늙은이.

[-D002] 경당(鏡當) : 

일본 천황 민달(敏達)의 연호.

[-D003] 개황(開皇) : 

수(隋)나라 문제의 연호.

[-D004] 경태(景泰) : 

명나라 경제(景帝)의 연호.

[-D005] 4 : 

1453 단종 원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