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日本)은 우리나라와 수륙(水陸)으로 긴밀하게 접해 있어 배와 수레로 왕래하는 행렬이 매일 길게 이어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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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7년 경자(1900) 9월 26일(갑오, 양력 11월 17일)
37-09-26[12] 적임자가 아니므로 본직과 여러 겸직을 체차해 주기를 청하는 주차일본 특명전권공사 성기운의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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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차일본 특명전권공사(駐箚日本特命全權公使) 성기운(成岐運)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은 암송하는 정도 외에는 배운 것도 없고 뛰어난 재목도 아니다 보니, 평소 가난하게 사는 생활을 편안하게 여기며 높고 귀한 길에 대한 희망은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천 년에 한 번 있을 법한 밝은 성상의 시대를 만나 생성(生成)해 주고 불식(拂拭)시켜 주는 은혜를 입어 지금까지 이미 분수에 넘치는 관직을 두루 거쳤으니, 매번 스스로를 살피며 깊은 계곡에 임한 것처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공사(公使)라는 새로운 명을 갑자기 내리시니, 이는 꿈속에서도 생각지 않은 것이어서 신은 참으로 당황스럽고 놀라워 더욱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명(辭命)을 수행하여 황제의 위엄을 떨치고 의견을 물어 은밀하게 시국(時局)을 살피며, 심지어 회동하는 자리를 주선하거나 공식적인 교섭을 추진하는 것들이 다 공사의 책무입니다. 진실로 문망(聞望)으로 평소 안팎에서 믿음을 받고 재주와 식견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탁월하게 발휘되어 정(鄭) 나라의 훌륭한 사신(使臣)인 자우(子羽)의 솜씨가 있다는 칭송을 받고 선비 나라의 강개한 기상을 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전대(專對)의 직임에 응하여 황명(皇命)을 욕되게 하지 않고, 국가의 체모를 높여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연전에 삼국 봉사(三國奉使)의 명에 대해서도 감히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리로 우러러 성상께 아뢰었던 것은, 사신의 임무가 이토록 긴요하고 중대하지만 신의 재주로는 감히 큰 허물 없이 임무를 수행하리라는 요행을 바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일본(日本)은 우리나라와 수륙(水陸)으로 긴밀하게 접해 있어 배와 수레로 왕래하는 행렬이 매일 길게 이어지는 곳이므로 사무를 융통성 있게 처리하려면 반드시 출중한 재주를 지닌 사람이어야 하니, 이곳은 법에 따라 주차(駐箚)하는 서양(西洋)의 먼 나라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리고 신이 맡고 있는 법규교정소 의정관(法規校正所議定官)과 철도원 감독(鐵道院監督)의 직함도 다 녹봉만 축내며 외람되게 차지하고 있으니, 신의 분수와 능력을 살펴보건대 절대로 그냥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에 감히 사정을 다 드러내어 우러러 호소하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황상께서는 신의 말이 괜한 겸손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살피시고 중대한 직임은 가볍게 주어서는 안 되는 점을 유념하시어 신의 본직과 겸임하고 있는 여러 직임을 속히 체차하심으로써 공기(公器)를 중하게 하고 사사로운 분수를 편안하게 해 주소서. ……”
하였는데, 받든 칙지에,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가서 일하는 것이 신하된 의(義)이거늘 굳이 이렇게까지 고사(固辭)할 필요가 있는가. 번거롭게 하지 말고 즉시 길을 떠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