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원(元) 세조가 탐라목장에 10만 필의 몽고 말을 풀어 번식하게 하고,

믿음을갖자 2022. 10. 22. 14:57

 

2022. 9. 18. 12:27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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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 제13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해중(海中)의 군대(軍隊) 이동의 길

그리고 우리나라의 군대로 말하면 백제가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가서 월주(越州)의 땅을 경계로 삼았는데 이는 곧 옛날 월()나라 구천(句踐)이 도읍했던 곳이며또 바다를 건너 북쪽으로 가서 요서(遼西)의 진평(晉平)을 경략(經略)하였는데 이는 곧 옛날 고죽국(孤竹國)의 지역이다최치원(崔致遠)이 당나라 시중(侍中)에게 올린 글에 보면 백제도 일찍이 중국의 제로(齊魯지방을 침공하여 이를 뒤흔들어 놓은 일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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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선생 사적 

동국통감〔東國通鑑〕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시대에는  북쪽으로 유주(幽州) 연주(燕州 ()나라와 ()나라의 지역 동요시키는  중국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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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집 제6권 별집 / 서사(書事)

이방익(李邦翼)의 사건을 기록함

살펴보건대, 장주(漳州)에는 신라현(新羅縣)이 있는데 당 나라 시대에 신라가 조공을 바칠 때 거쳤던 지역이었습니다. 또 “신라가 오(吳)ㆍ월(越)을 침범하여 그 지역의 일부를 점령하여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주(泉州)와 장주 지역의 유속(遺俗)이 우리와 유사하다는 것은 족히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의복을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아직도 고국을 그리는 마음이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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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 제26 / 물산지(物産志) 1

초류(草類)

인삼()

 인삼 중에 하북(河北)이나 민절(閩浙)에서 온 것을 신라삼(新羅蔘)이라 하는데, 모두 상당(上黨)에서 나는 인삼만 못하다. 

 

고전번역서 > 대동야승 > 송와잡설 > 송와잡설 > 최종정보

근간에 사부(師傅) 안응창(安應昌)의 《잡록(雜錄)》을 보니,

“인조조(仁祖朝)에 황익(黃瀷)이 통제사로 있던 때에 어떤 배 한 척이 표류해 왔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남방국에 사는 사람인데, 그 나라는 일본의 서남쪽 2천여 리에 있으며, 밀물과 썰물이 없다.’ 하고는, 또 ‘그 나라는 본래 신라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 신라가 망하게 되자 태자가 종족 1만여 명을 데리고 고려에 저항하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금강산으로 들어갔으나 골짜기는 좁고 사람은 많아 수용할 수가 없어서 민서(民庶) 20여 만 호와 함께 배를 나누어 타고 바다로 들어가서 어떤 섬에 이르러서 살았는데, 나라 이름을 남방국(南方國)이라 하고는 25개 국의 임금이 되었는데,, 백성들은 모두 신라의 후예들이며 지금도 건재한다.’ 하였다.

 

임하필기 제11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탐라(耽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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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임읍(林邑) 남쪽 해변의 소국(小國)이라 하고, 《위서(魏書)》에는 섭라(涉羅)라 칭하였으며, 《수서(隋書)》에는 담모라(聃牟羅) 또는 담라(儋羅), 탁라()라 하였다. 풍속이 질박하고 촌스러워 개와 돼지가죽 옷을 입었다. 여름에는 풀집[草屋]에서 살고 겨울에는 굴집[窟室]에서 살았다. 땅에는 오곡이 자라는데 밭갈이에 소를 사용할 줄 몰라서 철치(鐵齒 쇠스랑)로 땅을 고르게 하였다

해동역사 제16 / 세기(世紀) 16

탐라(耽羅)

진서(鎭書)가 삼가 살펴보건대, 탐라는 바다 섬 나라이다. 《후위서(後魏書)》에서는 섭라(涉羅)라고 칭하였고, 《수서(隋書)》에서는 담모라(𨈭牟羅)라 칭하였고, 《당서(唐書)》에서는 담라(儋羅)라 칭하고 또 탐부라(耽浮羅)ㆍ탁라()라 칭하였는데, 이는 모두 한나라이다. 우리나라의 방언에 도(島)를 ‘섬(剡)’이라 하고, 국(國)을 ‘나라(羅羅)’라 하는데, 탐(耽)ㆍ섭(涉)ㆍ담(儋) 세 음은 모두 섬(剡)과 음이 비슷하니, 대개 섬 나라를 이른 것이다. 고기(古記)에 칭한 바 처음에 탐진(耽津)에 정박하여 신라에 조회하였으므로 탐라(耽羅)라고 한다.’는 것은 견강부회한 설이다. 백제 문주왕(文周王) 때부터 백제를 섬겼고, 백제가 망하자 다시 신라를 섬겼으며, 고려 숙종(肅宗) 10년에 이르러 강등시켜 군()으로 삼았는데, 지금의 제주(濟州)이다.

○ 탐라는 임읍(林邑)의 남쪽 변경 바다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책부원귀》 ○ 《한창려집(韓昌黎集)》에는, “해외의 여러 나라 가운데 탐부라(耽浮羅)ㆍ유구(流求등의 나라는 동남쪽 천지(天池) 있다.” 하였다.

[주-D012] 임읍(林邑) : 지금의 안남(安南)에 있었던 나라 이름이다. 진(秦)나라 때 임읍현(林邑縣)을 설치하였고 한나라 때 상림현(林縣)으로 고쳤다. 후한 말기에 구련(區連)이란 자가 중국이 어지러운 틈을 타서 현령을 죽이고 자칭 임읍국왕(林邑國王)이라 하였는데, 수나라 때 이를 격파하고 임읍군(林邑郡)을 두었다. 당나라 때에는 다시 임읍국(林邑國)이라 하였고, 그 뒤에 임읍을 점(占)으로 옮겨 점성국(占城國)이라 하였다. 그 뒤 안남(安南)에 의해 멸망되었다.

 

 

청장관전서 제65권 / 청령국지 2(蜻蛉國志二)

이국(異國) 

점성(占城) 한(漢) 나라의 임읍(林邑)이었으며남천축(南天竺 오천축(五天竺)의 하나. 인도의 남부)에 인접하여 있다. 매우 더워서 벌거벗거나 흰 첩포(氎布 털로 짠 고운 천)를 몸에 두르며, 머리털을 모아서 상투를 틀거나 흩여서 뒤로 늘어뜨린다. 중국 사람이 그곳에 가서 무역하여 일본에 통한다. 일본에서 1천 7백 리 떨어져 있다. 이곳의 토산물로는 백단(白檀)ㆍ코끼리ㆍ보살석(菩薩石)ㆍ맹화유(猛火油 석유류(石油類))ㆍ화주(火珠)가 있다.

[주-D012] 임읍(林邑) : 지금의 안남(安南)에 있었던 나라 이름이다. 진(秦)나라 때 임읍현(林邑縣)을 설치하였고 한나라 때 상림현(林縣)으로 고쳤다. 후한 말기에 구련(區連)이란 자가 중국이 어지러운 틈을 타서 현령을 죽이고 자칭 임읍국왕(林邑國王)이라 하였는데, 수나라 때 이를 격파하고 임읍군(林邑郡)을 두었다. 당나라 때에는 다시 임읍국(林邑國)이라 하였고, 그 뒤에 임읍을 점(占)으로 옮겨 점성국(占城國)이라 하였다. 그 뒤 안남(安南)에 의해 멸망되었다.

 

고전번역서 > 다산시문집 > 다산시문집 제4 >  > 최종정보

다산시문집 4 / () 

기성잡시(鬐城雜詩)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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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9 장기(長鬐) 도착하여  이튿날 마산리(馬山里) 있는 늙은 장교(莊校) 성선봉(成善封) 집을 정하여 있게 됐다. 긴긴 해에  일이 없어 때로 짧은 시구나 읊곤 하였는데 뒤섞여 순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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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에는  털이  개가 났었지만 / 初春兩個白毛新
 개는 검은 편이고 하나만 하얗더니 / 一個猶玄一個純
이곳에 와서는  하나가  보태져서 / 此地又來添一個
  모두 천연스레 하얗기가 은빛 같네 / 天然三個白如銀
푹푹 찌는 비린내에 파리가 너무 많아 / 鮑腥蒸鬱苦多蠅
밥은  늦게 들고 잠은  일찍 깨네 / 飯每徐抄睡早興
이는 분명 하늘이 게으름을 징계함이리 / 天意分明懲懶散
옛사람이 무단히 부를 써서 미워했지 / 昔人詞賦枉相憎
 깨무는 빈대 통에 잠을  수가 없고 / 鼈蝨肌睡不成
벽에는  지네가 다녀 사람을 놀라게 하지 / 吳公行壁又堪驚
작은 벌레들 이빨도  맘대로 못하는데 / 須知齒非吾有
그렇게 생각하고 저들 멋대로 하랄 수밖에 / 念此怡然順物情
 따뜻해 작은 밭에 장다리꽃 활짝 피니 / 小園風暖菜花開
노랑나비 퍼렁벌레 번갈아 드나든다 / 黃蝶靑蟲遞去來
저걸 보면 장주가 물화 알았나봐 / 證得莊生知物化
죽장 짚고 느릿느릿 거닐면서 서성대네 / 徐携竹杖悄徘徊
옛날에 검정실로  작은 은낭 너를 / 疇昔烏繩小隱囊
 혼자서 끌어안고 이곳저곳  갔었지 / 隻身携汝到殊方
누우나 서나 네가  필요해서뿐 아니라 / 非唯臥起相須切
아버지가 만지시던 손때가 묻어서란다 / 爲是摩手澤方
은낭은 선인(先人)께서 쓰시던 것임. 
서남해 바다 물빛 금릉과 맞닿아서 / 西南海色接金陵
장사배가 며칠이면 이곳까지 닿는다네 / 商舶東來數日能
경뢰 바라보인다   믿지 못했더니 / 未信瓊雷解相望
빽빽하게 모인 섬들 푸르르고 험하구나 / 叢攢島嶼碧

 

 

 

[-D010] 경뢰(瓊雷) : 

해협(海峽이름중국 광동성 뇌주반도(雷州半島) 남해도(南海島사이에 위치한 경주해협(瓊州海峽). 일명 뇌주해협(雷州海峽)이라고도 하는데 홍콩[香港등지나 원남해협을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임. 

 

사료 고종시대사6   >   1872(고종 9) 7 1   >   고종, 전 제주 목사 조희순을 소견함

기사제목 고종,  제주 목사 조희순을 소견함
연월일 고종 9(1872,  穆宗 同治 11, 日本 明治 5) 7 1  

 상이 이르기를,

“해읍은 어느 나라와 가장 가까운가?

하니, 조희순이 아뢰기를,

“중국과 멀지 않고유구국(琉球國)과 또한 경계를 접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일본(日本)과 안남국(安南國)은 해읍으로부터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하니, 조희순이 아뢰기를,

일본은 5, 6일의 노정이고안남국은 7, 8일의 노정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해읍에서 대국(大國)까지 거리가 몇 리나 되는가?

하니, 조희순이 아뢰기를,

다소 먼 곳도 있고 다소 가까운 곳도 있는데몇 리인지는 상세히 알지 못합니다.

하였다. (후략)

출전   ㆍ『승정원일기』 고종 9년 7월 1

 

조선왕조실록 > 중종실록 > 중종 7 임신 > 2월 15 > 최종정보

중종 7 임신(1512) 2 15(경인)

전에 제주(濟州) 사람들이 안무사(按撫使) 죽였는데 최영(崔瑩) 토벌한 뒤에야 비로소 안정되었고, 고황제(高皇帝)께서 또한 우리 나라 사신에게 이르기를, 탐라(耽羅)는 본래 달단(韃靼) 사람들로서 군신(君臣)의 분의를 모르고 오직 목축(牧畜)으로 생업을 삼는 사람들이니, 국왕(國王)에게 말하여 잘 무마하도록 하라. 또한 왜인(倭人)들과 늘 상통하므로 제어하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주 목사(濟州牧使) 옛날에 ‘안무사’라 하여 무신(武臣)으로 차출하여 보냈는데, 근래에 김율(金慄)ㆍ민휘(閔徽) 모두 문신으로서 갔었고, 폐조(廢朝) 때에는 육한(陸閑)  고을의 목사가 되어 과목(果木) 모두 베어 버리니, 고을 백성들의 원망이 골수에 맺혔습니다. 

 

동명집 9 / 칠언고시(七言古詩68

전야행〔箭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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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성서 동쪽으로 십 리가량 되는 곳에 / 漢陽城東十里許
목장 있어 그 이름을 전야라고 하는구나 / 有一牧場名箭野
전야 목장 땅은 넓고 풀들 수북 자랐으매 / 箭野地廣水草美
나라 세운 이후부터 말 목장을 열었다네 / 國初以來開牧馬
우리나라 좋은 말은 제주에서 나거니와 / 國家善馬出濟州
매년마다 봄가을에 바다 건너오는구나 / 年年渡海來春秋
저 옛날에 원나라가 중국 지역 차지해서 / 伊昔胡元據中國
서쪽으로 대완 통해 화류마를 구하였네 / 西通大宛求驊
그러고는 우리나라에서 용매 기르게 해 / 遂令我國字龍媒
그 당시에 제주에다 말 목장을 열었었네 / 當時
濟州牧場

제주에는 높고 높은 한라산이 있거니와 / 濟州天作漢挐山
천리마를 그 산에다 방목하여 길렀다네 / 千蹄馬放山之間
지금에도 가끔씩은 천리마가 나오거니 / 至今往往有千里
그 조상이 천리마의 종자란 걸 알겠구나 / 信知其先天馬子
제주산의 천리마가 사복시로 들어오매 / 濟州天馬入太僕
우뚝 솟은 높은 말굽 마치 푸른 옥과 같네 / 高蹄削立如碧玉
전야 들판 봄풀 속에 풀어놓아 기르거니 / 放之箭野春草中
풀을 씹고 물 마시며 서로 몰려다니누나 / 齕草飮水相馳逐
준마 꼬리 끝에서는 북녘 바람 일어나고 / 駿尾蕭梢起朔風
도화질발 좋은 말에 오화마의 말이라네 / 桃花叱撥五花色
삭막 땅의 되놈 먼지 서북쪽에 가득 이니 / 朔漠胡塵滿西北
지난날에 말 기른 게 무슨 도움 되겠는가 / 從前養馬知何益
내원 있는 마구간에 천리마가 있거니와 / 內苑天廐有龍駒
어찌하면 이 말들을 장사에게 나눠 주어 / 安得散之壯士
저 
동호를 모조리 다 사로잡게 하려는가 / 擒東胡
아아 이 말 어찌하면 장사에게 풀어 주어 / 嗚呼安得散之壯士
저 오랑캐 모조리 다 사로잡게 하려는가 / 擒東胡

 

[-D002] 서쪽으로 …… 구하였네 : 

서역에서 아주 좋은 말을 구해 왔다는 뜻이다. 대완(大宛) 서역에 있는 나라 이름으로, 여기에서 생산되는 말은 붉은 같은 땀을 흘리는 천리마라고 한다. 화류마() 검은 색깔의 갈기에 붉은 색깔의 몸을 말로, 아주 좋은 말을 가리킨다.

[-D003] 용매(龍媒) : 

준마(駿馬) 가리키는 말로, 《한서(漢書) 22 〈예악지(禮樂志)〉에천마가 왔으니, 용이 오게 매개이다. 창합에서 노닐며, 옥대를 보는도다.〔天馬徠 龍之媒 遊閶闔 觀玉臺〕라고 데서 말이다.

[-D005] 동호(東胡) : 

동쪽의 오랑캐로, 흔히 거란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나라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

 

동계집 속집 1 / ()○오언율시(五言律詩) 

대정현(大靜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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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사백  가운데에 / 耽羅四百里
대정현이 가장 좁은 곳이라 / 大靜最彈丸
지리는 민월 땅과 통하고 / 地理通閩越
천문은 마한국을 비춘다오 / 天文照馬韓
군민이 원래 많지 않아서 / 軍民元不夥
방어하기 어려운 곳이라지 / 防守素稱難
다행히 귀양객이 있어서 / 賴有禦魑客
 동쪽 모퉁이가 온전하네 / 孤城東角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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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집 1 / 오언율시(五言律詩)

당자방(唐子方) 시에 차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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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성주로부터 비롯되었고 / 人惟肇星主
지역은 예전의 탐라로다 / 地是故耽羅
풍습은 사나운 섬 오랑캐에 가깝고 / 俗近島夷悍
배는 양자강(揚子江)과 절강(浙江)의 물결로 통하네 / 舟通江浙波
평생에 충신이 부족하기로 / 平生忠信欠
가는 곳마다 곤궁함이 많아라 / 到處困窮多
 저문 초가집 처마 아래에서 / 落日茅簷下
 한숨에 짧은 노래로다 / 長吁且短歌

[-D001] 성주(星主) :

신라  제주 사람 고후(高厚) 조회(朝會)오자, 왕이 기뻐하여 그에게 성주라는 호를 지어 주었는데,  이유는 그때 객성(客星) 나타났기 때문이다.  후로 고씨(高氏) 대대로 성주라고 일컬어졌다. 《訓讀吏文》

 

동계집 2 / () 

대정현(大靜縣) 동문(東門) 안에 위리(圍籬) 내력을 적은 기문(記文) 만력 갑인년(1614, 광해군6) 가을 8 모일(某日)이다.

이미 입정(入定) 뒤에 토착민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묻기를,

이곳 풍토에 대하여 내가 일찍이 들으니, 항상 비가 와서  날이 적고, 항상 바람이 불어서 조용한 날이 적으며, 매습(霾濕) 사람에게 침투하면 사람이 간혹 현기증으로 쓰러진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수일 동안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데다 건조하고 다습한 기후가 육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 전에 들었던 것이 잘못 들은 것인가?”

하니,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瀛洲) 전역은 바닷속에 있는 궁벽한 섬이지만 이곳 대정현은 바닷가가 더욱 가깝고 지형이 낮아서 장독(瘴毒기운이   중에서 가장 심합니다. 봄여름의 교차 시기부터 8 초순까지 음산한 비가 연일 내려서  날이 없고 사나운 바람이 무시로 불며 장무(瘴霧) 잔뜩 끼면 지척에서도 사람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이때가 되면 기둥들보창문 등에 물방울이 샘에서 솟는 듯하고의관(衣冠) 침상  자리가 습기를 받아 진흙과 같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비록 옷이나 재물이나 곡식이 있다 하더라도 여름철만 지나고 나면 썩어서 결국 쓸모없게 됩니다. 심지어 문에 부착한 돌쩌귀도 수년만 지나면 역시 모두 녹아 버리고 마는데 더구나 피와 살로  몸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 소인(小人)들은 이곳에서 나서 자랐기 때문에 몸에 배었습니다마는 내지(內地) 조관(朝官) 어찌 견딜  있겠습니까. 가을이 저물 무렵 서북풍이 일면 장려(瘴癘) 조금 걷히고 햇볕이 드러나는 것이 과연 요즘 날씨와 같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간혹 차지 않고 여름이 간혹 따뜻하지 않아서 기후가 불순하고 추위와 더위가 뒤바뀌기 때문에 의복과 음식을 조절하기가 어려워 질병이 발생하기 쉬우며, 지네지렁이  구물거리는 것들이 모두 겨울철을 지나고도 죽지 않고나무와 부추참깨와 같은 식물류들을 비록 한겨울일지라도 모두 밭에서 캐다가   있으니, 이것을 보면 나머지 다른 것은 미루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내가  말을 듣고 혀를 끌끌 차며 탄식하기를, “이곳은 참으로 별다른 지역이구나. 나와 같이 죄를 지은 자가 거처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동계집 2 / () 

주부(主簿) 하홍도(河弘道) 고향으로 돌아갈  전송한 서문

옛날에 바다를 논하는 자가 남해를 으뜸으로 삼았다.  말에 하늘은 서북쪽이 기울고 바다는 홀로 남쪽에 있어서  곳에 비하여 더욱 멀고 험하다.’ 하였는데, 지금 와서 직접 보고 나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다. 섬에서 육지까지는 거리가 천여  되는데 파도가 험하고 태풍이 항상 많아서 왕래하기에 용이하지 않은 배들이 서로 대기하곤 하는데, 사람들은  바다 보기를 저승으로 가는 관문처럼 여길 뿐만이 아니다.

..........................................

조용한 가운데 서로 마주하고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으며, 독한 안개가 살갗을 녹이는데도 괴롭게 여기지 않았으며무더운 바람이 뼈를 찌는 듯해도 병으로 여기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도록 권유했으나 응하지 않았고남들이 함께 나가서 놀고자 했으나 반기지 않았다. 

 

고전번역서 > 강한집 > 강한집 제2 >  > 최종정보

강한집 2 / ()

거제부 간덕촌 명나라 유민이 살던 곳에서 묵다〔宿巨濟府看德邨大明遺民所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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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이 황제의 도읍을 점거하여 / 滿洲據神京
천하가 온통 오랑캐 세상이 되었으니 / 天下皆被髮
..........................
전장의 먼지가  중국 덮었으니 / 煙塵滿九州
하필 유주(幽州) 갈석(碣石) 연연해하랴 / 何必戀幽碣
슬프도다 천주(泉州)와 장주(漳州)의 사람들이 / 哀哉泉漳客
뗏목을 타고 백월에서 왔을 때 / 乘桴自百粤
탐라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 耽羅不能容

포박하여 되놈들에게 바쳤네 / 纍纍獻戎羯
그런데 그대들만은  땅에  부쳐 / 爾獨棲此土
주륙을 면할  있었구나 / 得免伏斧鉞
도깨비 마을에 그림자를 감추고 / 匿影魑魅鄕
교룡의 굴에 자취를 숨겼네 / 遁迹蛟龍窟
명나라의 의관 여전히 바꾸지 않고 / 衣冠猶不改
힘을 다해 애쓰며 살았다네 / 筋力以自竭
중원에는 지사가 많은데 / 中原多志士
어찌 북벌을 도모하지 않는가 / 胡不謨北伐

[-D006] 백월(百粤) :

지명(地名)이다. 옛날 교지(交趾)에서 회계(會稽)까지 7, 8  주위에 군소 월족(越族)들이 모여 각기 작은 나라들을 매우 많이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文獻通考 輿地考 古越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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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잡록 6

정이오(鄭以吾)

 탐라(耽羅)는 그 풍속이 노(獠 서남지역에 사는 오랑캐)와 같고  땅이 멀며, 성주(星主 제주 목사) 왕자(王子) 토호의 세력 강한 자들이 평민을 다투어 차지하고, 일을 부리는데 이를 인록(人祿)이라 하며, 백성을 괴롭혀 욕심을 채우므로 다스리기 어렵다고 일컫는다. 〈교은송인서(郊隱送人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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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전서 38 / 유서(諭書)

동시 스크롤

제주의  목사 엄사만(嚴思晩)에게 감진사(監賑使) 잉임(仍任)하게 하고 이어 백성들을 위유(慰諭)하게 하는 유서 갑진년(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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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국토가 편소(褊小)하여 도가 모두 8개가 있고 (), (), (), () 겨우 360 개가 별과 바둑처럼 나열되어 있어 지도를 살펴보면   있을 정도이다. 한번 수한(水旱)이나 기근(饑饉) 들면 관할하기가 매우 편한데, 유독 탐라(耽羅)  지역은 바다 밖에 따로 떨어져 있어서 뭍길이 몇천여 리나 되고 물길은 그 두 배나 된다. 그곳의 소식은 이미 서울과는 막연하여 무마(撫摩)하는 일은 단지 수령들에게 맡긴 실정이다. 평범한 문서가 오는 데에도 걸핏하면 반년이나 걸리니 무릇 섬에 사는 백성들의 질고(疾苦) 걱정과 즐거움을 제대로  수가 없다. 이는 어찌 조정의 회유(懷柔)하는 은택이 섬과 뭍에 차이를 두어서 그러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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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언 48 속집 / 사방(四方) 2

탐라지(耽羅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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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라() 남해 가운데 있는 작은 나라인데, 너비가 400리이고, 해로(海路)로 970 멀리 떨어져 있다.

................................

충렬왕(忠烈王) 원년(1275) 원나라가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 설치하여 소, 말, 낙타, 노새, 양을 방목하였다가 충렬왕 20(1294) 총관부가 혁파되어 다시 고려에 소속되었다.

고려는 제주목(濟州牧) 설치하였는데, 6 뒤에 원이 다시 군민만호(軍民萬戶) 설치하여 내구마(內廐馬) 방목하다가 곧이어 폐기하였고, 공민왕 21(1372) 원이 다시 만호부를 설치하였으나 원이 망하자 다시 고려에 소속되었다.

홍무 7(1374, 공민왕23) 원나라 목자(牧子) 난을 일으켜 자칭 동서합적(東西哈赤)이라고 하면서 관장을 죽이니 고려 조정에서 최영(崔瑩) 보내 토벌하여 모두 죽였고, 우리 태조 5(1396) () () 설치하고 판관(判官) 두었다.태종 2(1402) 성주와 왕자를 혁파하여 좌우 도지관(左右都知管) 삼고, 정의(旌義) 대정(大靜)  () 설치하였다.세종 27(1445) 좌우 도지관을 혁파하고  읍에서 준수한 인재를 뽑아 상진무(上鎭撫) 두었다.

() 치소(治所) 두무악(頭無嶽) 북쪽에 있는데, 북쪽 지역은 항상 북풍이 많아 나무들이 모두 남쪽을 향하여 기울어 있다. 정의와 대정 두 현은 두무악의 남쪽에 있는데, 남쪽 지역은 바람이 없고 장무(瘴霧)가 많아서 낮에도 어둡다. 두무악은 한라산의 별칭인데, 또한 부악(釜嶽)이라고도 한다. 위치는 주의 치소에서 남쪽으로 20 지점에 있는데, 여러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마다 못이 있으며 지세가 평평하기 때문에 두무악이라고 한다. 가장 높은 정상에 백록홍(白鹿泓) 있고, 춘분과 추분 초저녁에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보인다.

부악의 동쪽에 있는 봉우리가 장올악(長兀嶽)인데 높이가 부악과 같고 위에 깊은 못이 있다. 큰물이 지거나 가뭄이 들면 그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산이 높아서 5월에도 눈이 쌓여 있고, 8월에 갖옷을 입는다. 주의 치소 동쪽 50리 지점에 장사퇴(長沙堆)가 있다.주와 현이 모두 산기슭과 바닷가에 있어 토지가 모두 모래와 자갈인데 주의 치소 옆에 있는 광양(廣壤)만이 붉은 진흙이다.

 지역은 장수하는 사람이 많고, 풍속은 음사(淫祠) 좋아하며, 남자는 적고 여자는 많아서 여자가 남자의 일을 하므로 여정(女丁)이라는 이름이 있다.

섬사람들은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해녀들은 치마를 입지 않고  자쯤 되는 베를 몸에 묶는다.

그곳에서 재배되는 곡물은 기장, , , 보리이고, 생산되는 물화는 빈주(璸珠), 대모(玳瑁), 나패(螺貝)이고, 잡히는 어물은 전복, 상어, 웅어인데 태생(胎生)이고 알로 낳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는 과일은 귤(橘), 유자(柚子), 등자(橙子), 감자(柑子), 치자(梔子), 비자(榧子)이며, 좋은 말이 난다.

산은 높고 바다는 사나워 그곳 사람들은 사냥과 낚시를 업으로 삼는데 그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산기슭의 땅은 돌이 많고 흙이 적기 때문에 밭을 갈아서 씨를 뿌리고는 밭을 밟는다. 벌레와 뱀이 많고 지네는 한 자 남짓한 크기이며, 향서(香鼠)가 난다.

산에는 범이나 표범, , 시랑 따위의 사나운 짐승이 없고, 여우와 토끼도 없다. 날짐승으로는 황새, 까치, 부엉이가 없고 산중에는 기괴한 새들이 보인다. 공물로 바치는 짐승으로는 사슴, 돼지, 해달(海獺) 있다.

탁라, 화탈(火脫), 여서(餘鼠) 사이는 바닷물이 시퍼렇고 심한 바람과 높은 파도가 잦다. 매해 봄과 여름에 남쪽 바다 너머를 바라보면 높은 돛대에  돛을  배가 무수히 지나간다. 이곳은 흑치국(黑齒國) 오랑캐가 중국과 교통하는 길목이고 또한 바다 건너 여러 만이(蠻夷)의 물화가 교통하는 곳이다. 서남쪽으로는 백해(白海)가 바라보이는데 최부(崔溥)가 표류하여 동풍을 타고 7일 만에 백해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 너머는 대유구(大琉球)가 있다.

 

고전번역서 > 만기요람 > 군정편 4 > 해방 > 최종정보

군정편 4 / 해방(海防)

전라도 제주(濟州)섬. 수로로 970리다. 순풍을 이용하면 하룻만에 닿을 수 있다[一日若風利則可以抵州]. 둘레 400여 리인데 온통 석벽으로 빙 둘려있으며, 우뚝한 바위[屹岩]가 늘어서 있으므로 선박이 접근할 수 없고, 다만 하천 어구에 보(堡)를 쌓아서 방어한.명월포(明月浦)고려의 최영(崔瑩)이 하치[哈赤]를 여기서 토벌하였다 ㆍ우도(牛島)인마(人馬)가 시끄럽게 하면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그 서남쪽엔 작은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굴이 있는데 차츰 들어가면 누선(樓船) 10척을 둘 만하다. 물소가 늘 산다. 

 

동사강목 15

갑인년 공민왕 23( 태조 홍무 7, 1374)

 ()에서 사신을 보내어 탐라마(耽羅馬) 징취(徵取) 갔다.

예부주사(禮部主事) 임밀(林密), 자목대사(孶牧大使) 채빈(蔡斌) 등이 와서 말하기를,

“원조(元朝)에서 말 2~3만 필을 탐라에 남겨 두어 번식이 많이 되었을 것이니 2천 필을 가려 뽑아 보내라.”

하니, 이에 문하평리(門下評理) 한방언(韓邦彦)을 탐라에 보내어 말을 취하였다.

................

추7월 

검산관(黔山串)에 이르러 최영이 서해도(西海道)의 전함을 기다려 같이 출발하고자 하니, 여러 장수들이 속히 가기를 청하였다. 보길박(普吉泊)지금의 영암군(靈岩郡) 속하여 있다. 에 이르러 최영이 또 바람이 없다 하여 머물고자 하매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용병의 기틀은 신속함을 소중히 여긴다.”

하며 배를 출발시키기를 힘써 청하였다. 제도(諸道)의 배들이 돛을 올려 일제히 출발하자 영은 마지못해 배를 출발시켰다. 저물녘에 추자도(楸子島)지금의 제주 바다 북쪽에 있다. 에 닿으려 하는데 갑자기 풍우가 크게 일어났다. 이튿날 제주에 이르러 최영은 여러 장수들의 부서(部署)를 정하여 사면으로 나누어 공격하게 하였다. 석질리필사 등이 3천 기병으로 명월포(明月浦)제주부 서쪽 60리에 있는데 바다 어귀가 배를 정박시킬 만하다. 에서 항거하였다. 최영은 제주에 사람을 보내어 효유하고 여러 장수들과 해안에 내렸는데, 군대가 머뭇거리고 진격을 하지 않으므로 이에 한 비장(裨將)을 베어 조리돌리니, 대군이 일제히 진격하여 좌우로 떨쳐 공격하여 크게 깨뜨렸다. 승세를 타고 30리까지 추격하였다가 여러 장수들이 한라산(漢拏山)제주 남쪽 2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밑에서 군사를 휴식시켰다. 적이 산의 남쪽 호도(虎島)에 들어가므로 최영이 군대를 진격시켜 포위하니, 초고독불화ㆍ관음보 등은 벼랑에 몸을 던져 죽고, 석질리필사는 사로잡아 허리를 베었다. 또 합치(哈赤) 등을 잡아 모조리 죽이니 시체가 포개어질 정도였다. 금은패(金銀牌) 및 인신(印信) 49개와 말 1천 필을 얻었다. 병졸 가운데 말과 소를 잡아 먹는 자가 있어 그를 베어 조리돌리니 사졸이 벌벌 떨고 추호도 범함이 없었으며 제주가 다 평정되었다.

【안】 원나라 때 유진(留鎭)과 목마(牧馬)의 일로 원나라 사람들이 제주에 와서 거주한 자가 매우 많았고 충렬왕(忠烈王) 때에는 원에서 죄인 40명을 이곳에 유배하였다. 그래서 제주에는 원나라 사람의 자손이 많다. 지금 조(趙)ㆍ가(李)ㆍ석(石)ㆍ초(肖)ㆍ강(姜)ㆍ정(鄭)ㆍ장(張)ㆍ송(宋)ㆍ주(周)ㆍ진(秦)씨들의 호적이 원(元)으로 본관을 삼는 것이 이것이다. 명(明) 초기에 운남(雲南)을 평정하고 양왕(梁王)의 가속을 제주로 이주시켰는데 지금의 원(元)ㆍ양(梁)ㆍ안(安)ㆍ강(姜)ㆍ대(對)씨들의 호적이 운남을 본관으로 삼은 것이 이것이다.
○ 《속문헌통고(續文獻通考)》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원 세조가 탐라를 남송(南宋)과 일본(日本)의 요충으로 삼고 또한 마음을 많이 쏟았다. 이에 그 땅에다 탐라국 초토사(耽羅國招討司)를 세우고 군사 1천 7백 명을 파견하여 둔진(屯鎭)케 하였다. 뒤에 고쳐 군민 도달로화적 총관부(軍民都達魯花赤摠管府)로 했다가 또 고쳐 군민안무사(軍民安撫司)로 하였다. 그 공부(貢賦)로는 매년 모시베[毛施布] 1백 필을 바쳤다.
우리 나라 말로 저(苧)를 모시(毛施)라고 한다.

정종 2년 경진(1400) 9월 16일(정축)

02-09-16[03] 제주의 백백 태자가 환자(宦者)를 보내 말 3필과 금가락지를 바치다

제주(濟州)의 백백 태자(伯伯太子)가 환자(宦者)를 보내어 말 3필과 금가락지를 바쳤다.
[주-D001] 백백 태자(伯伯太子) : 고려 말에 제주(濟州)로 망명한 원나라 왕족. 원나라의 운남(雲南) 양왕(梁王)의 아들로, 1382년(우왕8) 7월 탐라로 망명하였다. 이후 양왕의 자손들이 명에 의해 제주로 유배되자 그들과 같이 거처하였다.

대리국(大理國, 937년 ~ 1253년)은 937년에 현재의 중국 윈난성(운남) 지방을 주된 영역으로서 통치하고 있던 왕조였다.

대리국은 남조(南詔)의 후신으로, 단사평(段思平)이 937년 대의녕을 멸망시키고 건국했다. 왕족 단씨는 대리 지방의 백만계 부장이며, 남조 역대의 중신이었다. 대리국은 남조 문화를 계승하였고, 불교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백만 문화를 개화시켰다. 송나라와는 거의 교섭이 없었으며, 국내는 태평성대가 계속된다. 점차 권신 고승태가 대두하여 일시 왕위를 빼앗겨 중단되었으나, 얼마 후 부흥되어 후대리국(後大理國)이라 부르고, 송대의 약 3세기 동안 계속되었지만 1253년 몽골 제국이 쳐들어오자, 얼마 못가서 항복하였다. 그리고 대리의 영토는 의 세조의 서자가 다스리는 운남 왕국의 영토로 계승되었다

도은집 제5권 / 문(文)

중국 조정이 운남을 평정하고 양왕의 가속을 옮겨 제주에 안치한 것을 축하한 표문〔賀朝廷平定雲南發遣梁王家屬安置濟州表〕

동사강목 제14상 경진 고려 충혜왕 후 원년부터 계묘 고려 공민왕 12년까지 24년간

경인년 충정왕 2년(원 순제 지정 10, 1350)

3월 운남왕(雲南王)이 사신을 보내와 빙문(聘問)하였다.

원의 제왕(諸王)이다. 당시 원 황제의 사신(使臣) 외에 제왕(諸王)들도 혹 사신을 보내어 서로 빙문하였다.

 선조 26 계사(1593) 6 5(무자)

26-06-05[05]  원외를 접견하고 관의 설치, 중국군의 주둔 등을 논의하다

상이 말하기를,

“왜적이 아직도 부산에 머물러 있는데 그 간사한 음모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부산을 떼어 주고 계패를 세웠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하니, 원외가 말하기를,

“귀국의 《여지승람(輿地勝覽)》을 보니 부산은 실제로 귀국의 남단에 위치한 요지일 뿐더러 대마도의 적세가 바다를 건너서 거주할 수는 없으니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도 믿지 않습니다. 내가 운남(雲南)에 있었으므로 이 왜적의 정상을 익히 압니다. 왜적은 항상 이와 같은 말을 조작하여 사람들을 의혹시켰습니다.” 

 

고전번역서 > 기언 > 기언 제57 산고속집 >  > 최종정보

기언 57 산고속집 / (사언, 오언, 칠언, 장구

백제에서 서쪽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지은 노래. 9악장(樂章) 59()이다. 노래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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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멀리 대해를 바라보니 / 纍唯遠眺大海
.................
그 밖에 고르지 않은 드러내는 흑치국 / 其外黑齒棧齴
조와와 호연 / 爪蛙蠔蜒
오의국(烏衣國)과 나인국(裸人國) / 烏衣裸人
삼불제국(三佛齊國)과 사화공국(沙華公國) / 佛齊沙華

석목과 천허일세 / 析木天墟
아득히 바닷물 넘실거려 / 溟渤潏
괴이한 것들 많음이 놀랍구나 / 駭奇詭之多
망상은 사람을 잡아먹고 / 像食人
천오 쳐다보고 / 天吳眇
온갖 요괴들 부딪치도다 / 群妖遘迕
해동과 마함은 / 海童馬銜
소리 지르고 휘파람 불며 막아서고 / 叫嘯邀露
현혹하는 것이 법도가 없도다 / 眩惑無度
안개 자욱이 깔려 / 氛霧靉
넓은 우주가 어둑하고 / 廣宇▼(/(+))

 [-D008] 고르지 …… 흑치국 : 

유종원의 〈초해고문〉에임금이 돌아오지 않음이여, 끝내 고르지 않은 드러내고 비늘 무늬 피부를 가진 흑치의 포로가 되었네.〔君不返兮 終爲虜黑齒棧鱗文肌〕라는 구절이 있는데, 한순(韓醇) 주에흑치는 바다 밖의 나라 이름이다.” 하였고, 동종열(童宗說) 주에() 치아가 고르지 않은 것이고, () 치아가 드러난 것이다.” 하였다. 《五百家註柳先生集 18

[-D009] 조와(爪蛙) : 

옛날 사바국(闍婆國)인데, 동으로는 옛날 여인국(女人國) 접해 있고, 서로는 삼불제국(三佛齊國) 접해 있고, 남으로는 옛날 대식국(大食國) 접해 있고, 북으로는 점성국(占城國)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송나라 순화(淳化) 연간과 대관(大觀) 연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한 있다. 《嶺海輿圖 南夷島紀》

[-D010] 호연(蠔蜒) : 

수상생활을 하는 족속의 일종이다. 연만()에는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어연()으로 그물질을 잘하고, 하나는 호연으로 자맥질을 잘하고, 하나는 목연()으로 재목을 벤다. 《通雅 14 地輿》

[-D011] 오의국(烏衣國) : 

당나라 금릉(金陵) 사람 왕사(王謝) 풍랑을 만나 섬에 표류하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나라를 오의국이라고 하였는데, 왕이 자기의 딸과 혼인을 시켰다. 왕사가 고향을 그리워하자 왕이 구름을 태워 보냈는데, 집에 돌아와서야 그곳이 제비 나라였다는 것을 알았다. 《記纂淵海 97

[-D012] 나인국(裸人國) : 

목현허(木玄虛) 〈해부(海賦)〉에바람 따라 나인(裸人) 나라에 들어가고, 물결따라 흑치(黑齒) 나라에 표류한다.” 하였는데, 이선(李善) 주에 《회남자(淮南子)》를 인용하여서남으로부터 동남에 이르면 나인의 나라와 흑치의 백성이 있다.” 하였고, 허신(許愼) 주에 백성은 옷을 입지 않고, 그 사람들은 치아가 검다.” 하였다. 《文選 12 海賦》

[-D013] 삼불제국(三佛齊國) : 

본래 남만(南蠻) 별종인데, 점성(占城) 남쪽에 있다. 송나라 건륭(建隆) 초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嶺海輿圖 南夷島紀》

[-D014] 사화공국(沙華公國) : 

동남쪽 바다에 사화공국이 있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바다에 나가서 해적질을 하고, 사람을 잡아서 매매한다. 《嶺外代答 3 東南海上諸雜國》

 

고전번역서 > 다산시문집 > 다산시문집 제4 >  > 최종정보

다산시문집 4 / ()

탐진 풍속 노래[耽津村謠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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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령 잿마루에 바위가 우뚝한데 / 樓犁嶺上石漸漸
길손이 눈물 뿌려 사시사철 젖어 있다 / 長得行人淚灑沾
월남을 향하여 월출산을 보지 마소 / 莫向月南瞻月出
봉마다 모두가 도봉산 모양이라네 / 峯峯都似道峯尖
월출산은 강진(康津) 있고, 도봉산은 양주(楊州) 있음.
동백나무 잎들은 얼어도 무성하고 / 山茶接葉泠童童
속에 꽃이 피면 붉기가 이마 같아 / 雪裏花開鶴頂紅
갑인년 어느 날에 소금비가 내린 후로 / 一自甲寅鹽雨後
유하나무 감귤나무도 모두 말라 없어졌다네 / 朱欒黃柚盡枯叢

바닷가 왕대나무 키가 커서 백 자러니 / 海岸篔簹百尺高
지금은 낚싯배 상앗대로도 쓴다네 / 如今不中釣船篙
정원지기가 날마다 대를 가꾸어서 / 園丁日日培新
죽력 내내 권문세가에 바치기 때문이야 / 留作朱門竹瀝膏
성벽은 무너져 언덕바지 설렁한데 / 崩城敗壁枕寒丘
해가 지면 징소리만 주춧돌을 울린다네 / 鐃吹黃昏古礎頭
여러 섬에 나무들을 해마다 베어만 내지 / 諸島年年空斫木
청조루 중건하는 사람은 없다네 / 無人重建聽潮樓
무논에 바람 불면 보리물결 장관이고 / 水田風起麥波長
보리타작 무렵에 모를 게다 꽂는다 / 麥上場時稻揷秧
배추는 눈 속에서 새로 잎이 파랗고 / 菘菜雪天新葉綠
병아리는 섣달에 솜털이 노랗다네 / 鷄雛蜡月嫩毛黃
석제원 북쪽에는 갈림길이 많아서 / 石梯院北路多歧
예부터 낭자들이 이별하는 곳이라네 / 終古娘娘此別離
한도 많은 앞의 수양버들 나무들은 / 恨殺門前楊柳樹
그통에 꺾이고 남은 가지 없어 / 炎霜摧折少餘枝
눈처럼 새하얀 새로 짜낸 무명베를 / 棉布新治雪樣鮮
이방에 돈이라고 졸개가 뺏는구나 / 黃頭來博吏房錢
누전의 조세를 성화같이 독촉하여 / 漏田督稅如星火
삼월하고 중순이면 세 실은 배를 띄운다네 / 三月中旬道發船
왕적(王籍) 누락된 민전(民田) 6 () 이르는데 그것을
(災結) 거짓 보고하고 있으니 국가 조세가 얼마나 많이 축이 나겠는가.
완주의 황옻칠은 맑기가 유리 같아 / 莞洲黃漆瀅琉璃
나무가 진기한 천하가 알고 있지 / 天下皆聞此樹奇
작년에 성상께서 세액을 견감했더니 / 聖旨前年蠲貢額
봄바람에 밑둥에서 가지가 났다네 / 春風髡蘖又生枝
오만족 총각인지 머리털은 더부룩한데 / 烏蠻總角髮如雲
써내는 글씨 보니 중국 문자 아니로세 / 寫出三倉法外文
자바섬이 아니면 루손섬에서 왔으렷다 / 不是瓜哇應呂宋
장미빛 옥합에서 야릇한 향내 풍기네 / 薔薇玉盒發奇芬
이때 표류선이 제주도에 정박하고 있었는데 어느 나라 사람인지 수가 없었음.
백련사 누대 앞에 둥그렇게 비친 물결 / 蓮寺樓前水一規
봄이면 같은 조수 문중방까지 오른다네 / 春潮如雪上門楣
유명한 다해봐야 두륜사가 으뜸이지 / 名藍總隷頭輪寺
서산대사 공적 기린 어제비가 있으니까 / 爲有西山御製碑
시골 애들 습자법이 어찌 그리 엉망인지 / 村童書法苦支離
점획과파 모두가 낱낱이 비뚤어져 / 點畫戈波箇箇欹
글씨방이 옛날에 신지도에 열려 있어 / 筆苑舊開新智島
아전들 모두가 이광사에게 배웠었는데 / 掾房皆祖李匡師
가시밭길 어느 때나 앞길이 트일는지 / 荊棘何年一路開
누른 띠밭 참대나무 주릿대 비슷하네 / 黃茅苦竹似珠雷
형방의 아전들이 소란 떠는 것이 / 形房小吏傳呼急
서울에서 누가 귀양을 왔군그래 / 知是京城謫客來
삼월이면 송지에 말시장이 열리는데 / 三月松池馬市開
오백 푼만 집어주면 천재마를 고르게 되지 방언에 좋은 말을 일러 천재마(天才馬)라고 . / 一駒五百揀天才
흰말총 체라던지 검은말총 갓이랑은 / 白騣籮子烏騣帽
그 모두가 한라산 목장에서 온 거라오 / 都自拏山牧裏來

전복이야 옛날부터 점대에서도 즐겼지만 / 自古漸臺嗜鰒魚
동백기름이 창자 훑어낸다는 헛말이 아니로세 / 山茶濯語非虛
안의 아전들 들창문 안에는 / 城中小吏房
규장각 학사들의 서찰이 꽂혔네 / 奎瀛學士書
도독 영문 지가 이백 년이 되었는데 / 都督開營二百年
부두에는 왜놈 배를 다시 매지 못했었지 / 皐夷不復繫倭船
진린 사당 속엔 봄풀이 우북한데 / 陳璘廟裏生春草
아낙들이 돌을 던져 아들 점지 해달란다네 / 漁女時投乞子錢

 

[-D002] 오만족 : 

중국 사천성(四川省) 남부운남(雲南) 동북부 등지에 흩어져 사는 종족들. 《唐書 南蠻傳》

[오만(烏蠻) : 중국 사천성(四川省) 남부에서 운남성(雲南省) 북부에 걸친 지역으로, 대체로 오나라가 있던 곳이다

임하필기 제39권 / 이역죽지사(異域竹枝詞)

마육갑국(嘛六甲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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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점성에 있던 만라가였는데 / 初在占城滿刺加
명나라가 국왕을 봉하고 좋은 이름 주었네 / 大明封國錫名嘉
사람은 성질 기교하고 기구는 정교 치밀하며 / 性情機巧器精緻
짧은 바지에 긴 웃옷 복식이 아름답도다 / 短袴長衣服飾姱
이 나라는 본래 만라가(滿刺加)인데, 영락 연간에 중국에 와서 조공을 바치므로 국왕(國王)으로 봉해 주었다. 사람은 성질이 기교하고 기구는 정교 치밀하였다. 그들은 물색 베로 머리를 휘감고 긴 웃옷에 짧은 바지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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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 38 / 해동악부(海東樂府)

서호곡(西湖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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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말기의 백성들은 가난에 쪼들려 / 景炎之族傷於貧
화방에서 가벼운 치장으로 매춘을 하네 / 畫舫輕裝自買春
어떤 장사가 선뜻 천금을 버리겠는가 / 壯士千金誰肯擲
일조에 탐라의 먼지를 씻기 어려워라 / 一朝難滌耽羅

선우추(鮮于樞) 지은 것인데,  가사에, “서호의 유람선에 있는    딸이던고 행하(行下) 탐내어 억지로 가무를 하네. 어떻게 해야 천금을 던져 주는 사나이를 만나 기생 노릇 하다가  지아비를 섬길  있을는지.[西湖畫舫誰家女 貪得纏頭强歌舞 安得壯士擲千金 坐令桑濮歌行露]” 하였다. 이에 대해 이익재(李益齋) 말하기를, “송나라가 망하자 사족(士族)들이 이런 식으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상심한 것이다. 탐라(耽羅)의 이 가곡은 극히 비루하지만 그래도 민간 풍속을 보고 시대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하였다.

 

예조(藝祖) : 문덕(文德)을 소유한 시조(始祖)라는 뜻으로,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나오는데, 보통은 송(宋) 나라 태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에 대해 청(淸) 나라 고염무(顧炎武)는 “사람들은 송 나라 사람들이 자기 태조(太祖)를 예조(藝祖)로 부르는 것만 알지, 이전 시대부터 태조를 예조라고 해 온 사실은 모르고 있다.” 하였다. 《日知錄 藝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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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려실기술 별집 19 / 역대전고(歷代典故) 기화(氣化)를 논하다

○ 삼한의 옛 전기에, “단군의 아버지는 환웅(桓雄)이며, 부루(夫婁)의 아들이 금와(金蛙)이며, 동명(東明)은 알에서 생겼고, 혁거세는 박[瓢]에서 나왔으며, 석탈해ㆍ김알지ㆍ수로왕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고, 또 탐라의 고(高)ㆍ부(夫)ㆍ양(梁) 세 성은 모흥(毛興)이란 구멍에서 나왔으며, 견훤은 큰 지렁이의 아들이고, 고려 태조는 당 나라 선종(宣宗)의 자손이며, 범증(范增)의 선조는 마니산(摩尼山)에서 나왔고, 손권(孫權)의 선조는 묘향산(妙香山)에서 나왔으며, 북제(北齊)의 태조 고 환(高歡)의 선조는 정주(菁州)에서 나왔고, 송 예조(宋藝祖)의 선조는 탐라에서 나왔으며, 본조의 청해백(靑海伯) 퉁두란(佟頭蘭)은 악무목(岳武穆)의 7대손이다.” 하니, 이와 같은 설은 그 잡다함을 이루 셀 수 없다. 단군의 사실은 오래되고 자세하지 않아서 이치로 따지기 곤란하나 신라의 세 성의 시조와 고구려의 고씨의 시조와 수로ㆍ견훤에 이르러서는 모두 한 나라와 당 나라 때의 사람들이니, 중국의 경우는 뱀의 몸 복희씨(伏羲氏) ㆍ소의 머리 신농씨(神農氏) 등의 전설 이후에는 듣지 못하였는데, 유독 우리나라에만 이런 기괴한 일이 있다 하니, 어째서인가. 우리나라의 문헌이 가장 늦게 나왔기 때문에 이치 밖의 말이 있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는 이른바 제동 야인(齊東野人)들의 말로써 취하여 기준으로 삼을 수가 없다. 《동문광고》

속동문선 9 / 칠언절구(七言絕句) 

을유년 2 28일에 직산의 성환역에서 제주에서 양을  받치러  사람 김극수도 역시  있었다. 그래서 밤에 얘기를 하는데 대강  풍토와 산물을 물어보고  말을 기록하여 탐라가 14수를 지었다[乙酉二月二十八日宿稷山之成歡驛濟州貢藥人金克修亦來因夜話略問風土物産遂錄基言爲賦乇羅歌十四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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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金宗直)

 

우정에서 서로 읍하매 서로 친한  같은데 / 郵亭相揖若相親
겹으로  집에는 갖가지의 약물이 진기하다 / 包重般般藥物珍
옷소매는 비린내를 띠었고 말은 까다롭거니 / 衣袖帶腥言語澁
보건대 그대는 진실로 바다  사람이다 / 看君眞是海中人

 

당초에 손발로 서매 그가 신인인데 / 當初鼎立是神人
 짝은  뜨는 물가에서 좇아왔다 / 伉儷來從日出濱
백세의 혼인은 다만  가지 성이라 / 百世婚姻只三姓
전한 풍속과 말하는  보면 주진 같다 / 遺風見說似朱陳

 

성주 이미 망하매 왕자가 끊어졌고 / 星主已亡王子
신인의 사당도 거칠어 쓸쓸하다 / 神人祠廟亦荒涼
세시에는 아직도 부모를 멀리 생각하나니 / 歲時父老猶追遠
퉁소와 북으로 다투어 광양당에 베푼다 / 簫鼓爭陳廣壤堂

 

물길이 어찌 한갓 수천 뿐일까마는 / 水路奚徒數千里
해마다 오고가매 전부터  기억한다 / 年年來往飽曾諳
구름돛을 달면 문득 화살처럼 달리나니 / 雲帆掛却馳如箭
하룻밤 순풍이면 해남에 도착한다 / 一夜便風到海南

 

한라의 아득한 기운이 방사에 통하여 / 漢挐縹氣通房駟
구름같은 비단 물풀 사이에 나뉘어 흩어진다 / 雲錦離披水草間
  호원이 감목한 뒤로부터 / 一自胡元監牧後
해마다 화류는 천한에 들어갔다 / 騮歲歲入天

 

오매와 대모와 검은 산호와 / 烏梅玳琄黑珊瑚
부자와 청피 천하에 없나니 / 附子靑皮天下無
 물산은 오직 동방의 부고일  아니라 / 物産非惟東府庫
정영 모두 사람을 살리는 약에 든다 / 精英盡入活人須

 

 새우와 해월과  호산과 / 螯海月與蠔山
거구와 문린  얼마나 많은가 / 巨口文鱗又幾般
해가 저물어 비린 연기가 향정을 덮으면 / 日暮腥煙羃鄕
수우의 많은 배들은 생선을 싣고 돌아온다 / 水虞千舶泛鮮還

 

 집의 귤과 유자가 가을 서리에 익으면 / 萬家橘柚飽秋霜
그것을 따서 대바구니에 넣고  바다를 건넌다 / 採着筠籠渡海洋
대관이 받들어 붉은 섬돌에 올리면 / 大官擎向彤墀進
아직도 완완히 빛깔과 맛과 향기가 완전하다 / 宛宛猶全色味香

 

사군의 수레와 말이 빽빽하게 에워싸면 / 使君車騎簇長圍
꿩과 토끼와 사슴 등의 온갖 종류가 엎드린다 / 雉兎麏䴥百族披
바다 섬에는 다만 곰과 호랑이와 표범이 없어 / 海島但無熊虎豹
 속으로 다니거나 한데 자도 놀라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 林行露宿不驚疑

 

 끝에서 풀을 베다가 전룡을 만나는데 / 庭除草際遇錢龍
술로서 빌고 향을 사르는 것은 바로 지방 풍속이다 / 祝酒焚香是土風
북쪽 사람이 놀라고 두려워하면 다투어 서로 웃나니 / 北人驚怕爭相笑
도리어 지네 대통에 있을까 두려워한다 / 還恐吳公在竹筒

 

여염집 자제들은 상서에 놀아 / 閭閻子弟游庠序
지금도 음악과  외기에 교육을 즐거워한다 / 絃誦而今樂育多
넓은 바다에  일찍이 지맥을 끊었던가 / 滄海何曾斷地脈
뛰어난 인재가 가끔 외과에 뽑히거니 / 翹材往往擢巍科
근원 없는  위의 신령스러운 못물은 / 頭無岳上靈湫水
가뭄도 말리지 못하고 비가 와도 불리지 못한다 / 旱不能枯雨不肥
벽력과 구름과 산기운이 갑자기 생겨나니 / 霹靂雲嵐生造次
노니는 사람으로 누가 감히 신위에 무람없으리 / 遊人疇敢褻神威

 

화탈도 서쪽의 물이 서로 치면 / 火脫島西水相擊
바람과 우레는 용솟음치고 성낸 물결은 높다 / 風雷噴薄怒濤高
 섬의 바다미꾸라지 곁으로 지나가면 / 萬斛海鰌傾側過
나그네의 생명은 기러기 털과 같다 / 行人性命若鴻毛

 

바람을 기다려 조천관에 머무러 있으면 / 候風淹滯朝天館
아내와 자식은 서로 보면서 술잔을 권한다 / 妻子相看勸酒盃
한낮이 되어 부실부실 가랑비가 뿌리나니 / 日中霡霂霏霏雨
알겠다 이것은 추어가 기운을 뿜어 오는 것이다 / 知是鰍魚噴氣來

[-D001] 성주(星主) : 

제주도의 특별한 벼슬이었는데 고려 말년과 조선 초기에 있었다.   고씨(高氏)만이   있었는데, 뒤에 와서는  그렇지도 않은  같다.

[-D002] 바다 미꾸라지[海鰌] : 

바다의 미꾸리라고도 하는데  크기가 고래의  10 배나 된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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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려실기술 별집 19 / 역대전고(歷代典故)

백제의 속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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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元) 나라 세조가 제주에 목장을 설치하고 10만 필의 몽고 말을 풀어놓아 번식하게 하고, 다루하치[達魯花赤]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토지를 고려에 주고 해마다 공물(貢物) 바치게 하였다 《동문광고》 충렬왕(忠烈王) 20 조에 있다.

○ 20년에 왕이 나라에 조회하고 탐라를 돌려주기를 청하니, 나라 승상(丞相) 완택(完澤) 등이 아뢰어 황제의 뜻을 받들어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다음 해에 제주(濟州) 고쳤다《여지승람》

26년에 원 나라 황태후가 또 구마(廐馬)를 방목하였다가 31년에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여지승람》

제주의 왕자 문창유(文昌裕)에게 성주(星主) 칭호를 내려 주고, 고인조(高仁朝) 등에게는 장복(章服) 내려 주었다《동문광고》

공민왕 11(1362) 나라에서 부추문(副樞文) 아단불화(阿但不花) 탐라 만호(耽羅萬戶) 삼았다《여지승람》

나라 목자(牧子) 강폭하여 여러 나라에서 보낸 목사(牧使) 만호를 죽이고서 반란을 일으키므로, 김유(金庾) 목자를 토벌하자 나라에 호소하여 만호부(萬戶府) 설치하기로 청하였다. 왕이 나라에 아뢰어, 본국으로 하여금 스스로 관리를 임명하고 고사(故事) 같이 목자가 기르는 말을 골라서 바치기를 청하니, 황제가 따랐다《여지승람》

○ 명(明) 나라가 일어나자 조서를 내려 전마(戰馬) 1만 필을 바치라고 하므로, 임금이 제주에 사신을 보내어 말을 바치라고 명하니, 원 나라 목자 합치(哈赤) 등이 말하기를, “이 말은 바로 세조(世祖) 황제가 기른 것인데, 어찌 명 나라에 바칠 수 있는가.” 하고, 드디어 난을 일으켜 관리를 죽이니, 임금이 도통사(都統使) 최영(崔瑩) 보내 그들을 쳐서 죽이고 다시 관리를 두었다《동문광고》

일찍이 나라 순제(順帝)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것을 보고, 제주도에 들어가 보존하고자 하여 공장(工匠) 안에 보내 크게 궁실을 짓도록 하였다가, 계획이 미처 시작되기도 전에 나라 군사에게 몰려 북쪽 개평(開平)으로 달아났다. 공민왕이 영전(影殿) 짓는 역사에 나라 공장 원세(元世) 11명을 제주도에서 부르니, 개성에 이르자, 원세가 재상에게 말하기를, “ 나라 황제가 토목 공사를 일으키기 좋아하다가 민심을 잃었기 때문에 스스로 천하를 보전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에 우리들로 하여금 제주도에다 궁궐을 짓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섬에 들어와 보전하기도 전에 나라는 망하고 몸은 도망쳐 우리들을 모양으로 의식(衣食) 잃게 했습니다. 나라는 넓은 천하를 가지고도 백성을 수고롭게 하다가 패망하였습니다. 고려가 비록 크지만 인민을 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공(諸公) 임금에게 아뢰소서.” 하였다《동문광고》

우리 태종 2(1402) 성주 고봉례(高鳳禮) 왕자 문충세(文忠世)등의 성주와 왕자의 칭호가 참람되다 하여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管)으로,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고칠 것을 청하였다《여지승람》

진산(鎭山) 한라산(漢拏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름과 은하수[雲漢] 움켜잡아 끌어 당길 있기 때문이며, 두무악(頭無岳)이라고도 하는데, 봉우리마다 모두 평평하기 때문이며, 원산(圓山)이라고도 하는데 궁륭(穹窿)하게 둥글기 때문이다. 산마루에 못이 있는데 사람들이 떠들면 구름과 안개가 끼어서 지척을 분간할 없으며, 5월에도 아직 눈이 있다. 《여지승람》

조천관(朝天館) 삼읍(三邑 제주ㆍ정의(旌義)ㆍ대정(大旌))에서 육지로 나가는 자는 모두 이곳에 배를 댄다《여지승람》

남사고(南師古) 말하기를, “백두산맥(白頭山脈) 동쪽의 대해(大海) 들어가 일본이 되고, 남쪽의 대해로 들어가 탐라(耽羅) 되었다.” 하였다. 세상에 전하기를, 땅이 바로 노인성(老人星) 분야(分野)인지라 오래 사는 사람이 많으며, 바로 방성(房星) 분야인지라 [] 번식하며, 남방은 () 통할하기 때문에 지방에 여자가 많아서 1명의 남편이 10명의 아내를 가진 자도 있다. 이곳에서는 호랑이ㆍ표범ㆍ곰ㆍ담비ㆍ승냥이ㆍ이리 사람을 해치는 동물과 여우ㆍ토끼ㆍ부엉이ㆍ까치 등이 없으며, 들사슴이 많은데 어족(魚族) 변화한 것이다. 한라산 마루에 오르면 하얀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데, 곧 유구(琉球)의 지경이다. 서남쪽으로는 절강성(浙江省)과 복건성(福建省)이 가깝고, 북쪽으로는 강진(康津)ㆍ해남(海南)과 접하여 세상에서 수로가 9백 리라고 일컫지만 실은 4백여 리라 한다. 토산물로는 감ㆍ귤ㆍ유자와 여러 가지 향목(香木) 약재(藥材) 나오는데, 영릉향(零陵香)ㆍ안식향(安息香)ㆍ종유(鍾乳)ㆍ백랍(白蠟)ㆍ석결명(石決明)ㆍ빈주(璸珠)ㆍ앵무라(鸚鵡螺)ㆍ우황(牛黃)ㆍ총모(騣帽)ㆍ양대(梁臺) 등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