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쪽 나라 한 구석만 잔멸이 쉬지 않을 뿐 아니라 강회(江淮)의 사이도 역시 이로 인하여 난리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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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제26권 / 경사문(經史門)
동국내지(東國內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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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원종(元宗) 원년에 몽고 황제가 여섯 가지 일을 윤허하며 조서(詔書)하기를, “의관(衣冠)만은 본국의 풍속을 따른다.” 하였고, 3년에 또 조서하기를, “무릇 아뢰는 바는 모두 다 들어 주겠으며 의관에 대한 것도 변경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대개 이미 의관을 변혁한다는 명이 있었는데 본국에서 간청하여 허락을 얻은 것이다.
뒤에 원 나라가 중국에 들어와 황제가 되자 화인(華人)의 상복(常服)을 금하지 않았다. 지금은 천하가 다 이미 머리를 깎았는데 오직 한 조각 동한(東韓)만이 오히려 옛 제도를 보전하였으니, 이는 힘으로써 스스로를 보전한 것이 아니요, 자못 하늘의 뜻이 잠재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나라는 천하에 가장 약한 나라이다. 지역이 편벽하고 백성이 가난한 것만이 아니라 기자(箕子)가 봉(封)을 받은 이후로 문교(文敎)가 끊어지지 않아 모두 예의의 나라라 일컫기는 하나, 문교가 성행하면 무비(武備)가 허술한 것은 역시 그 형세이다. 수성(守成)을 즐거워하고 정토(征討)를 싫어하며 사대(事大)에 부지런하고 천명을 두려워하여 상하 3천 년 사이에 오직 이를 규모로 삼았을 따름이다. 진실로 만에 하 나라도 이를 어긴다면 쇠잔하고 무너지지 아니한 바가 없으니, 다 거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몽고 황제가 자주 허락한 것은 아마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만약 한결같이 북쪽 풍속을 따라 내복(內服)에 혼합하여 궁마(弓馬)에 민첩하고 전쟁에 익숙하다면 우리는 곧 하나의 요(遼)요, 금(金)일 것이니 원 나라와 더불어 각축한다 해도 반드시 회초리를 꺾어 매질할 정도로 우리를 얕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압록강으로 한계선을 삼아 큰 갓과 긴 띠에 붓을 쥐고 책을 읽도록 맡겨 두어, 지혜는 사장(詞章)에 피폐되고, 힘은 과거(科擧)에 다 빠지게 하여 그 직공(職貢)만을 닦아 조회의 열에 서게 하는 것만큼 득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원 나라 황제의 본뜻이었다.
또 충숙왕 때에 이르러 행성(行省)을 세우고 국호를 파하여 내지(內地)에 비등하게 하기를 청하는 자가 있자 태정제(泰定帝 태정은 진종(晉宗)의 연호)는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이제현(李齊賢)은 도당(都堂)에 글 올리기를, “소방(小邦)은 땅이 천 리를 넘지 못한 데다 산림(山林)ㆍ천수(川藪)의 쓸데없는 땅이 10분의 7을 차지하고 그 토지에 세를 매겨도 조운(漕運)하기에 부족하고, 그 백성에게 부(賦)를 과하여도 녹봉(祿俸)에도 지공되지 못하여 조정의 용도에 비하면 아홉 마리 소에 터럭 하나 격입니다. 더더군다나 지역은 멀고 백성은 어리석어서 언어가 상국과 같지 않고, 취사(取捨)가 중화와 월등히 다르니, 아마도 이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의구심을 자아낼 것이나 집집마다 찾아가 깨우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왜와 더불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으니, 만일 이 말을 듣는다면 그들이 우리로써 경계를 삼지 않겠습니까?” 하자, 이로써 의논이 마침내 그치게 되었다.
나의 생각으로는 왜의 땅이 비파(琵琶)의 형국이라 뾰족한 머리가 서쪽을 향했으므로 왜놈은 때로 나와 침범하고 약탈할 수 있는 반면에 외국 군사는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관(館)을 설치하여 후히 대접하되 영남의 부세를 반쯤은 실어다가 그들을 안무(安撫)하여서 변경이 조금 안정된 편이나, 만약 상국으로 하여금 그들을 임하게 한다면 이전대로 인습하는 것은 명분이 없고 제도를 변경한다면 틈이 벌어질 것이니, 이는 우리 동쪽 나라 한 구석만 잔멸이 쉬지 않을 뿐 아니라 강회(江淮)의 사이도 역시 이로 인하여 난리가 계속될 것이다. 기왕은 차치하고 논하지 않더라도 장래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나라를 꾀하는 자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주-D001] 동국내지(東國內地) :
동국을 내지로 함. 《類選》 卷9下 經史篇8 論史門.
[주-D002] 내복(內服) :
왕기(王畿)를 중심으로 주위를 순차적으로 나눈 구역. 옛날 주대(周代)에는 각각 5백 리씩으로 된 후복(侯服)ㆍ전복(甸服)ㆍ남복(男服)ㆍ채복(采服)ㆍ위복(衛服)등 오복(五服)을 두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