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동녕부(東寧府) ㅡ 가도(椵島)는 가죽섬[皮島]이다.

믿음을갖자 2023. 5. 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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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2 / 천지문(天地門)

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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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椵島)는 가죽섬[皮島]이다. 가수(椵樹)는 우리 말의, 가죽나무다. 지금은 삼화현(三和縣)에 속하며 50리 밖의 바닷속에 있다. 고려 원종(元宗) 10년에 임연(林衍)이 왕을 쫓아내고 안경공(安慶公) 창(淐)을 세웠을 때에 최탄(崔坦)ㆍ한신(韓愼)ㆍ이연령(李延齡)ㆍ계문비(桂文庇)ㆍ현효철(玄孝哲) 등이 임연을 토벌한다는 명목 아래 무리들을 모집하여 들어가서 섬의 병영을 점령하고 분사어사(分司御史) 심원준(沈元濬)과 감창(監倉) 박수혁(朴守奕)과 경별초(京別抄) 등을 죽이고 몽고에 가서 허위로 보고하기를, “고려에서 북계(北界) 모든 성에 있는 사람을 모조리 죽이려 한다.” 하였다.

몽고의 황제는 그에게 금패(金牌)를 주고 조서를 내리어 그곳을 몽고에 편입시키고 명칭을 동녕부(東寧府)라 하고 자비령(慈悲嶺)을 경계선으로 확정하고 탄(坦)을 총관(總管)에 임명하고 군대 3천 명을 서경(西京)에 보냈다. 뒤에 왕이 복위하여 여러 성을 반환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16년에 이르러 황제는 동녕부를 폐지하고 서북 지방의 여러 성을 모두 반환하고 탄은 처형하였다.

이곳은 또 근세에 모문룡(毛文龍)이 점령했던 땅이다. 고려왕조부터 병영을 설치했다가 반란군들에게 점거된 곳이다. 지금 《여지승람(輿地勝覽)》에는 그 전말을 기술했어야 할 터인데도 빠져 있기 때문에 일부러 수록한다.

[-D001] 가도() : 

《類選》 卷1下 天地篇下 地理門. 《林下》 卷13 文獻指掌編3.

[-D002] 모문룡(毛文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