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당(唐) 나라 이적(李勣)이 우리나라의 문물(文物)이 중국에 뒤지지 않는 것을 시기하여 모두 불태워버렸으며,

믿음을갖자 2022. 11. 2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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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본 아정유고 3 / () - ()

기년아람(紀年兒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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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찍이 고정림(顧亭林 정림은 청 나라 학자 고염무(顧炎武)의 호)ㆍ주죽타(朱竹坨 죽타는 주이준(朱彝尊)의 호)의 저서를 읽어보니, 조정과 국가의 전장(典章)에 대하여 정미(精微)한 것을 분명하게 밝혔고 고금(古今)의 모든 것을 널리 알아서 근본에 입각하여 실용(實用)할 수 있도록 힘썼다. 나는 탄복하며,

“지금 세상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나는 장차 찾아가서 질정하겠다.”

하고는 일찍이 몇 년 동안 구했었다. 하루는 김효효재(金嘐嘐齋) 선생을 뵈었더니 선생은,

“이자 만운(李子萬運)은 나이 많은 학자이다. 국조(國朝)의 문헌(文獻)에 밝아, 고사(古事)를 인용할 적에 분명하게 증거가 있어 날짜까지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

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스스로 기뻐하여,

“이분이야말로 어찌 지금 세상의 고정림과 주죽타가 아니겠는가?”

하고는 그 즉시 일어나 동리(東里)로 가서 이공(李公)을 뵈니 쓸쓸한 초가집에 얼굴은 해맑고 모발이 듬성듬성하였다. 서적이 나란히 쌓여 있는 사이에 단정히 앉아 눈에는 안경을 쓰고 손에는 산가지를 잡고는 바야흐로 지나간 세대의 연혁(沿革)한 일을 징험해 보고 전인(前人)들의 생졸(生卒)한 해를 미루어 계산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시험삼아 단군(檀君)ㆍ기자(箕子) 이래로 국조에 이르기까지의 의난(疑難)되던 일 30~50가지를 질문하니, 공은 희색이 만면하여 후배가 찾아와 질문하는 것을 고맙게 여기는 듯하였다. 입으로 대답하고 손으로 쓰면서 여기저기에서 여러 책을 꺼내어 대소(大小)를 구분하고 이동(異同)을 분별하여 의심되는 것을 풀어주고 잘못된 것을 바루어 술술 말씀하니 공(公)이야말로 박학(博學)의 연수(淵藪)였다.

나는 다시 승국(勝國 고려(高麗)를 가리킨다) 이상으로서 증거할 만한 문헌이 없는 것들을 질문하였더니, 공은 탄식하면서,

“당(唐) 나라 이적(李勣)이 고구려를 평정하고는 동방(東方)의 모든 서적을 평양(平壤)에다 모아놓고 우리나라의 문물(文物)이 중국에 뒤지지 않는 것을 시기하여 모두 불태워버렸으며, 신라 말엽에 견훤(甄萱)이 완산(完山 지금의 전주(全州) 지방)을 점령하고는 삼국(三國)의 모든 서적을 실어다 놓았었는데, 그가 패망하게 되자 모두 불타 재가 되었으니, 이것이 3천년 동안 두 번의 큰 액(厄)일세.”

하고는 이어 《중국동방기년아람(中國東方紀年兒覽)》을 꺼내 주면서,

“이것은 내가 편찬한 것일세. 학자나 문인들이 명물(名物)ㆍ도수(度數)의 분별을 소홀히 하여 중국의 연대에 대해서는 대강 알면서도 우리나라에 관한 것은 도리어 까마득히 모르고 있으니, 이것은 자기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 자네를 보건대 꽤 총명하니 이 책을 감수하고 증보하여 없어지지 않을 책으로 만들어주기 바라네.”

하였다. 나는 삼가 받고 돌아와서 2개월 동안 손질하여 완성하였다.

내용은, 중국의 사실로는 홍황(鴻荒 아주 오랜 옛날) 10기(紀)의 세대에서부터 청(淸) 나라에 이르기까지의 봉건한 열국(列國)과 참절(僭竊)한 것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강역(疆域)과 주군(州郡)을 또한 뒤에다 부록하였다. 우리나라 것으로는 삼조선(三朝鮮)ㆍ한사군(漢四郡)ㆍ이부(二府 한사군 개편 뒤의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와 동주도독부(東州都督府)를 말한다)ㆍ삼한(三韓)ㆍ삼국(三國)ㆍ고려(高麗)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속국(屬國)의 경계와 군현(郡縣)의 총수(總數)를 아래에 기재하였고, 발해(渤海)ㆍ일본(日本)의 세계(世系)ㆍ주군(州郡)과, 가락(駕洛)ㆍ유구(琉球)의 세차(世次)에 대해서도 각각 부록하였으며, 중국과 우리나라의 과분(瓜分 오이를 쪼개듯 국토를 갈라 주는 것)한 세대를 서로 연대를 들어서 계산하기 편리하도록 하였다.

이 책은 기년(紀年)을 상세히 하였고 정윤(正閏)에 엄하였으며, 사실을 간략하게 기재하고 또한 서법(書法)을 조심하였다. 명(明) 나라와 본조(本朝)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히 하였다. 이상은 이 책의 대강 내용이다.

나는 이미 공의 부탁을 받아 윤문하고 증보하였으므로 삼가 증보 두 자를 위에 써서 표시하였는데 책은 모두 2권이었다.

아람(兒覽)이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공이 스스로 겸손하여 어린아이들이나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唐) 나라 손혁(孫奕)은 《자서(字書)》 한 권을 편찬하고는 《시아편 (示兒編)》이라 이름하였으니 그 뜻은 똑같은 것이다.

이 책은 역사가들의 총령(總領)이 되니 먼저 어린이들로 하여금 많이 복습하여 환히 알게 한다면 이십삼사(二十三史), 또는 우리나라의 모든 역사책과 본조 열성(本朝列聖)의 지장 보감(誌狀寶鑑)까지도 저절로 알게 되어 마치 층계를 따라 올라가고 한칸한칸 채우는 것과 같아서 매우 쉬울 것이다.

정밀하고 요약한 것으로 말하면 소학(小學) 명물ㆍ도수 따위이지만 굉박(宏博)에 미친다면 정치가의 나라를 다스리는 학문이 될 것이니 도리어 중대하지 않은가. 책이 완성하게 되자 등사(謄寫)하기를 원하는 선비가 끊이지 않으니 이 책이 반드시 세상에 전하여질 것을 믿는다.

[-D001] 김효효재(金嘐嘐齋) : 

효효재는 조선 숙종(肅宗) 때의 학자 김용겸(金用謙)의 호. 그의 자는 제대(濟大)이며 관향은 안동(安東)으로 경서와 예문(禮文)에 밝았으며, 벼슬은 공조 판서에 이르렀다.

[-D002] 정윤(正閏) : 

정통(正統)과 비정통(非正統)을 말하는데, 우리나라 예로 말한다면 신라가 망한 후 고려가 정통이 되고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은 비정통으로 윤(閏)에 해당한다.

[-D003] 소학(小學) 명물(名物)ㆍ도수(度數) : 

여기에서 말한 소학은 고소학(古小學)으로서 물건에 대한 명칭이나 도수 등 자질구레한 어린이의 상식적인 학문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