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환불화는 동북면 사람인데, 기사년에 황제의 명령으로 중국에 간 사람이었다.

2023. 6. 26. 18:05이성계의 명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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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나라 황제가 조선이 사람을 보내어 요동에 금은과 포백(布帛)을 가지고 가서 예를 행하자는 핑계로 명 나라의 변장(邊將)을 꾀어 내고, 또 사람을 보내 여진족(女眞族)을 꾀어 몰래 압록강(鴨綠江)을 건너게 한 일들을 수조(手詔)를 내려 힐책하니, 태조가 표문을 올려 변명하였다. 대략에 말하기를, “요동에 가서 예를 행하자고 한 일은 역시 상국을 우러러 사모하는 뜻입니다.
사절이 왕래하는 즈음에 손님과 주인이 서로 접대하는 의식은 예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니 어찌 꾀었다 하겠으며, 또 여진족은 동녕(東寧)에 예속되어 있어서 이미 군사로 삼아 복무하게 하였으니 어찌 사람을 보내어 꾀었겠습니까. 다만 요동도사(遼東都司)가 군사를 일으켜 탈환부하[脫歡不花]를 칠 때에 여진의 관하(管下)에 있던 사람들이 혹 따라가지 않았던 자가 있었으나, 그것은 저들이 향토를 떠나기 싫어했기 때문이지, 우리가 강제로 머무르도록 시킨 것은 아닙니다. 저들이 우리나라에 바친 바 없고 전부터 해오던 생활을 각기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하였으니, 이는 곧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글이었다.
명제(明帝)가 글이 거만스럽다고 더욱 노해서 요동에 명하여 조선의 사절을 들이지 못하게 하니, 우리 사신이 요동에 갔다가 들어갈 수가 없어서 돌아온 자가 무릇 다섯 패나 되었다. 명제가 사신을 보내 와서 태조에게 유세하여 친아들을 보내라 하였다. 태조가 태종(太宗) 방원(芳遠)에게 일러 말하기를, “만약 황제가 묻는 일이 있을 경우 네가 아니면 능히 상세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하고, 드디어 태종에게 명하여 표문을 가진 조반(趙胖)과 전문을 가진 남재(南在)와 함께 명 나라에 가게 하니,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 태종을 위하여 위험한 걸음이라고 염려하였다.
태종이 명 나라에 당도하니, 명제가 두세 차례 만나 보았다. 태종이 상세하고 분명하게 아뢰니 명제가 우대하여 돌려 보내고, 명하여 두 나라 사이의 왕래를 트게 하였다. 
《용비어천가》 《동각잡기

 

태조실록 3권, 태조 2년 4월 3일 丁丑 1번째기사 1393년 명 홍무(洪武) 26년

서북면 도순문사 조온이 탈환불화가 예전의 관하 인민을 찾으러 왔다고 보고하다

서북면 도순문사(都巡問使) 조온(趙溫)이 보고하였다.

"상국(上國)의 사신(使臣) 탈환불화(脫歡不花)가 예전의 관하(管下) 인민(人民)을 찾기 위한 일로써 왔습니다."

대개 탈환불화는 본디 동북면(東北面) 사람인데, 고려 왕조의 기사년에 황제의 명령으로 중국에 간 사람이었다.


○丁丑/西北面都巡問使趙溫報: "上國使臣脫歡不花, 以推刷舊管下人民事來。" 蓋脫歡不花, 本東北面人, 在前朝己巳歲, 以帝命就去者也。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 > 태종 4년 갑신 > 4월 4일 > 최종정보

태종 4 갑신(1404) 4 4(갑술)

04-04-04[02] 왕가인의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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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인(王可仁)은 본래 아조(我朝) 동북면(東北面)의 향화인(向化人)인데, 태상왕(太上王)의 잠저(潛邸) 때에 휘하(麾下)가 되어, 태상왕의 천발(薦拔)에 힘입어서 벼슬이 추밀(樞密)에 이르렀다. 고황제(高皇帝) 때에 소환(召還)되어 이름을 수(脩)로 고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미 15년이 되었다. 처자(妻子)가 모두 잘 있었다.

【원전】 1 집 293 면

【분류】 인물(人物)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 > 태종 3년 계미 > 1월 18일 > 최종정보

태종 3년 계미(1403) 1월 18일(병신)

03-01-18[02] 태상왕이 내관 만세영을 시켜 태평관에서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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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왕이 내관(內官) 만세영(萬歲榮)에게 명하여 사신에게 태평관(太平館)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왕득명이 말하기를,

“내가 무진년에 방문(枋文)을 반포하러 왔었을 때 시중(侍中) 최영(崔瑩)이 죽이려고 하였는데, 전하께서 의리를 들어 말리어서 살아 돌아갔으니 전하의 은혜가 분골난망(粉骨難忘)입니다. 지금 또 사람을 시켜서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니 감사하기가 말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세영이 돌아와 고하니, 태상왕이 말하였다.

“그 사람이 정말 무진년에 와서 방문을 반포한 자라면, 그 말이 옳다.”

【원전】 1 집 256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