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섬 970리 물소가 사는 섬

2022. 9. 5. 20:12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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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편 4 / 해방(海防)

서해 남부[西海之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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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西海)의 해안은 남쪽은 해남(海南)의 명양(鳴洋) 서쪽에서 부안(扶安)에 이르러 북쪽으로 향하여 조금 동쪽으로 비껴 만경(萬頃)에서 서산(瑞山)에 이르러 북으로 비스듬히 나가고, 서산(瑞山)에서 동쪽으로 구부러져 돌아서 홍주(洪州)의 대진(大津)에 이르며, 수원(水原)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조금 서쪽으로 비껴 통진(通津)의 조강(祖江) 남쪽에 이른다. 지면이 바다로 구부러져 깊이 들어간 곳은 해남(海南)의 우수영(右水營) 및 등산곶(登山串)과 영광(靈光)의 망운(望雲), 무안(務安)의 해제(海際), 홍주(洪州)의 흥양(興陽), 태안(泰安)의 전 군(郡) 및 군의 안흥(安興)ㆍ양남ㆍ북(梁南北)의 2개면, 서산의 대산곶(大山串)이다.

전라도 해남(海南)의 우수영(右水營)ㆍ입암포(笠巖浦)ㆍ별진포(別珍浦) 이순신이 적을 여기로 유인하여 크게 격파했다 ㆍ완도(莞島)둘레 290리. 동북의 한 모퉁이는 영암(靈巖)과 강진(康津)에 나누어 붙었고, 황장소(黃膓所)를 두어 그 일을 3개 읍에 나누어 맡겼는데 금상 4년(1804년)에 모두 강진에 붙이었다. 전해오기를, “옛적에 이 섬엔 송징(宋徵)이란 무용이 뛰어난 장수가 있었는데 화살이 6리 밖에까지 나갔으며, 활 줄이 끊어져 피가 흘렀다고 한다. 지금도 반석(盤石)에 피 자국이 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ㆍ연자도(燕子島)전설에, “고려 때 남경(南京)의 사신의 바다를 건널 때에 제비각씨를 이 섬에 남겨두고 돌아갈 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아서 제비각씨는 그만 물에 빠져 죽었다 하여, 뒷사람들이 이 섬을 연자각씨도(燕子閣氏島)라고 불렀다.”고 한다 ㆍ입암도(笠巖島)돌이 우뚝 서서 마치 돌사람이 흰 의관을 한 것 같다[如石人衣冠皆白]고 하여 그렇게 이름하였다.제주(濟州)섬. 수로로 970리다. 순풍을 이용하면 하룻만에 닿을 수 있다[一日若風利則可以抵州]. 둘레 400여 리인데 온통 석벽으로 빙 둘려있으며, 우뚝한 바위[屹岩]가 늘어서 있으므로 선박이 접근할 수 없고, 다만 하천 어구에 보(堡)를 쌓아서 방어한다.명월포(明月浦)고려의 최영(崔瑩)이 하치[哈赤]를 여기서 토벌하였다 ㆍ우도(牛島)인마(人馬)가 시끄럽게 하면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그 서남쪽엔 작은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굴이 있는데 차츰 들어가면 누선(樓船) 10척을 둘 만하다. 물소가 늘 산다. 그 위엔 집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데, 마치 태양이 빛나듯 별빛이 반짝이는 듯하다. 기후가 몹시 추워서 털이 쭈삣[竦然]하다. 전설에, “여기에 신룡(神龍)이 있어서, 7ㆍ8월 사이엔 고기잡이배가 갈 수 없으며, 만약 가기만 하면 큰 바람이 일고 천둥이 울며 비가 쏟아져 나무가 뽑히고 벼를 상하게 한다.” 한다. 그 위엔 닥나무가 많고 양치는 목장[羊場]이 있다 ㆍ비양도(飛揚島)화살감 대[竹]가 많다 ㆍ정의(旌義)의 오삭포(五朔浦)생선 점포가 있는데 겨울과 봄에 와서 살다가 여름에는 옮겨간다[移去].우도(牛島)와 가까워서 사람이나 짐승이 많이 모여서 시끄럽게 하면 꼭 큰 바람이 불어 나무를 뽑고 벼를 상하게 한다 ㆍ삼도(森島) 높고 험하여 발을 붙일 수 없다 ㆍ호도(虎島)속칭 범도(凡島)라 부른다. 최영(崔瑩)이 하치[哈赤]를 토벌할 때 하치가 도망하여 이 섬을 점거하였는데, 전함(戰艦)을 모아 에워싸고 군사를 이끌고 상륙하여 토벌하였다.대정(大靜)의 죽도(竹島)4면이 다 석벽이다. 옛적에 왜적이 여러 번 여기로 침입하였다.